mtb 길

고흥----------------------해변,천등산,마복산,운암산

단석 2013. 7. 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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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고속도로--순천 ic--벌교---고흥

 

 

-고흥 공설운동장---호형리---보림리---미인치---율치리---철쭉동산---신호리---당치---호형리---공성운동장(5시간)

 

-충무사(이순신장군 위패 모신곳)

 

-10경 8품 9 미 ==    10경=팔영산,소록도,고흥만,해상경관,비자나무숲,용바위,금산해안,마복산기암절경,남열리일출,중산일몰

                           8품=유자,석류,해미(간척지쌀,)마늘,참다래,꼬막,미역,한우

                           9미=참장어, 낙지, 삼치, 전어, 서대 , 굴, 매생이, 유자향주, 붕장어

 

-빅토리아호텔-발포해수욕장 에 자리


-맛집        운암정육점식당- 예약하고 먹어야하는 삼겹살집                                  고흥군청앞  고흥군 서문리 219-20

               일성식당--------푸짐한 해물과 전복을 곁들인 짬뽕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863

               중앙식당 ------- 한정식                                                                고흥군 도화면  





박지


                   팔영산 박지


                   봉래산 박지


                         천등산 박지


                   적대봉 박지





고흥 10 경


01.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신세가 험한 팔영산

 

구름도 쉬어가는 팔영산 팔봉

세수대야에 비친 여덟봉우리를 찾아 먼길을 달려온 위왕!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 - 유영봉, 성주봉, 생황봉, 사자봉, 오로봉, 두류봉, 칠성봉, 적취봉.

옛날 중국의 위왕이 세수를 하다가 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에 감탄하여 신하들에게 찾게 하였으나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어

 우리나라까지 오게 되었는데, 왕이 몸소 이 산을 찾아와 제를 올리고 팔영산이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02. 아픔을 딛고 다시 도약하는 섬 소록도

  

아픔을 딛고 다시 도약하는 섬 소록도

사슴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산다고 이야기되는 곳!

소록도는 고흥반도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km가 채 안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닮았다고 하여 소록도라 불리운다. 

섬의 면적은 15만평 정도로 작지만 깨끗한 자연 환경과 해안 절경, 역사적 기념물 등으로 인해 고흥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소록도 이야기                                                         

  소록도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K목사 앞에

일흔이 넘어보이는 노인이 다가와 섰습니다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목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제발"
그저 해본 소리는아닌 듯

사뭇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K목사는 무언가 모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저에게는 모두 열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자리를 권하여 앉자 노인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전,그 아이가 열 한 살 때였지요"


""발병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
더운 여름날 먼지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만 겁니다.

그러다 어느 산 속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나는 문득 잠에 골아 떨어진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바위를 들었지요.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깨워 가던 길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 만 나는
마주 서있는 아들에게 내 심경을 이야기했지요.
고맙게도 아이가 이해를 하더군요.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을 벗어두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발 두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높이였지만
아들에게는 턱밑까지 차올라 한걸음만 삐끗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인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하느냐는 거지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아들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 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 후 소록도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 전에 큰 아들이

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 함께 올라와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펴 주면 드러누워 자면 그만이고.
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났지만 얼마동안은 참 편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큰 아이가 입을 엽디다.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렸죠.
그런데 사정은 그후로도 마찬가지였어요.

둘째, 세째, 네째--….
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 전에 헤어진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열한 살에 문둥이가 되어 소록도라는 섬에 내다버린 아이,


내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팽개치고 40년을 잊고 살아왔던 아이,
다른 아홉명의 아이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대학까지 마쳐 놓았지만

내다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아이...

 

                               


다시 또 먼길을 떠나 그 아이를 찾았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고 내다 버린 채
한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노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아홉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버린 하나의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을 변화시킨 분이라면
나 또한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겠노라고 난 다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여기 음성 나환자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애는 내가 여기와서 함께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아홉명의 아이들에게선

한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언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그러니 목사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

 

  -     옮긴 글   -

  









03. 바다를 메워 새로운 땅으로 거듭난 고흥만

  

바다를 메워 새로운 땅으로 거듭난 고흥만

고흥만 방조제, 경비행장, 항공센터가 한곳에! 

1991년 착공한 고흥만 간척사업은 3천 100㏊의 바다를 매립 2005년 말 1천 700여㏊가 농경지로 탈바꿈 되었고, 내부개답은 2006년 말에 완공 되었다. 

간척지 내부에는 전국 최초의 경비행장(52×1,100m)과 항공센터가 있어 경비행기를 이용한 스카이다이빙지로 각광을 받고 있고, 또한 745ha의 담수호와 인공습지가 조성되어  많은 철새가 찾는 곳이며,  고흥만 방조제는 길이 2.8㎞로 확 트인 바다를 조망하면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코스이며 낚시터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04. 기암절벽이 금강산을 그대로 옮긴 듯 한 나로도 해상경관

  

기암절벽이 금강산을 그대로 옮긴 듯 한 나로도 해상경관

수려한 경치가 바다와 어울려 절정을 이루는 곳! 나로도의 아름다운 해상경관과 외나로도의 해안은 땅에서 보는 것과는 젼혀 다른 느낌으로

기암절벽의 연속이다. 꼭두녀, 마침머리, 용굴, 부처바위, 우주센터 전경, 쌍굴 등 해안절경의 파노라마가 이어진다.


 

 

 



05. 천등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희귀 천연기념물 금탑사 비자나무 숲

  

금탑사를 안고 세월을 견뎌 온 비자나무숲

 철쭉과 억새물결이는 천등산의 품에 비자나무숲이~ 천등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비자나무숲은

금탑사 주위 13ha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에 3,300여주가 군생하고 있는 희귀 천연기념물이다. 

주변에는 율곡 이이의 부친이 호환(虎患)이 두려워 심었다는 나도밤나무가 있다. 

금탑사를 둘러싸고 있는 비자나무숲은 사찰 창건 후 300~400년이 지난 1700년 이후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며

 30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민족의 역사를 굽어보고 있다.



06. 승천의 꿈을 품에 안은 영남 용바위

  

승천의 꿈을 품에 안은 영남 龍바위!

자녀들을 위해 부모들이 공을 드려 등용문 구실을 하고 있는 용바위! 

영남면 우천리 용암마을 해변에 위치해있는 용바위는 반석과 암벽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먼 옛날 남해바다의 해룡이 하늘로 승천할때 이곳 암벽을 타고 기어 올라갔다 하는 전설이 있는데

그 자국이 너무도 뚜렷하게 남아있어 보는이로 하여금 신기함을 자아내게 한다.

주변이 넓은 반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단체나 가족단위 나들이 장소로 좋으며

 주변 전체가 갯바위 낚시터로도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어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곳이다.


07. 시원한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금산 해안경관

  

시원한 바다가 한눈에~금산 해안경관!

빼어난 절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거금도 금산! 거금도 즉, 금산면에서 바라보는 해안 절경은 단연 으뜸이다. 

국도를 따라 오천쪽으로 도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오른 편으로 다도해의 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차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부아도, 준도, 시산도, 초도, 손죽도, 거문도, 장도, 원도, 황제도… 섬 섬 섬들. 

행운이 좋아 바다 위에 뭉게구름이라도 곁들어지면 그 어떤 천하의 산수도 부럽지 않다.


08. 꽃보다 아름다운 마복산 기암절경

  

꽃보다 아름다운 마복산 기암절경

이름도 다양한 수많은 바위들이 옹기종기 서있는 마복산!

마복산의 산등성이에는 수많은 지릉이 흘러내리고 그 지릉마다 바위꽃이 활짝 피어 있어 마치 금강산이나 설악산의 축소판을 보는 듯 하다. 

물개바위,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은 경관 때문에 마복산은 소개골산(小皆骨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09. 아침을 여는 해돋이의 명소 남열리 일출

 

아침을 여는 해돋이의 명소 남열리 일출

철썩 철썩 쏴~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일출을 볼 수 있는곳!  

남열리 일출은 드넓은 백사장에서 해돋이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을 지닌 곳이다. 

수평선 저 너머에 떠오르는 일출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해돋이를 기다리는 동안 남열리 마을에서 석화 뎅이굴을 장작불에 구워 먹는 재미도 솔솔하다.

매년 1월1일 남열 해수욕장에서 새해 해맞이 행사를 개최 한다.



10. 사라지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중산 일몰

  

사라지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중산 일몰

고흥을 관광하다 해질녁에 잠시 남양면 중산리에서 발길을 멈추면 한낮의 빛을 잃고 사그러져가는 멋진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고흥반도를 돌아나오는 날 내내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은 아마도 중산리 일몰의 잔잔한 여운이 많이 남아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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