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b 길

영주------------------------소백산자락길 1~12 코스143

단석 2014. 11. 21. 14:29

 

 

 

영주-소백산자락길1~12.gpx

 

 

 

                           

 

○ 1 자락안내

소수서원 → 금성단 → 죽계구곡 → 초암사 → 달밭골 → 비로사 → 삼가동
(12.6km, 4시간 30분)

- 선비길 : 선비촌(소수서원) – 금성단(순흥향교) – 송림호(순흥저수지) - 배점분교(삼괴정) = 거리 3.8km(70분)
- 구곡길 : 배점분교(삼괴정) - 죽계구곡 - 초암사 = 3.3km(50분)
- 달밭길 : 초암사 – 달밭골 – 달밭재 – 비로사 – 삼가주차장 = 5.5km(150분)

달밭골

비로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골짜기에 있는 산골 마을이 달밭골이다. 달밭골은 소백산의 가슴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그 속살은 부드럽고 푸근하다.
달밭골은 ‘달’은 원래 산의 고어이다. 즉 ‘산의 경사지에 있는 작고 다닥다닥 붙은 다락밭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달밭골은 옛날 화랑도들이 무술을 익히던 훈련장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오고 있다.

 

 

 


 

○ 2 자락안내

삼가주차장 → 금계호(삼가저수지) → 금선정 → 정감록촌(임실) → 풍기소방서 → 풍기온천 → 소백산역
(15.6km, 4시간 20분)

- 학교길 : 삼가주차장 – 삼가분교 – 금계호(펜션마을) = 3.7km(60분)
- 승지길 : 금계호 – 금선정 – 임실마을 – 풍기소방서 = 4.0km(70분)
- 방천길 : 남원천 - 방천길 - 풍기온천 - 소백산역 = 7.9km(130분)

 

 

2자락은 소백산자락길 탐방로 중 유일하게 기차역이 통과하는 코스로 열차를 이용한 탐방객이 걷기에 좋은 곳이다.
조선시대 정감록의 십승지 중 1승지로 손꼽히는 이곳은 오감만족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자연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게 만드는 2자락의 매력은 풍부한 먹을거리, 볼거리, 체험거리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인삼재배지로 유명한 풍기에서 맛깔스런 음식, 인삼재배체험, 사과따기체험 등의 다양한 농촌체험, 전국에서 으뜸가는 유황온천인 풍기온천체험까지 다양한 팔색조 매력을 가진 2자락에서 오감만족 여행을 즐겨보세요.



 


 

○ 3 자락안내

소백산역 → 죽령옛길 → 죽령마루 → 용부원리 → 대강면(장림리)
(11.4km, 3시간 20분)

- 죽령옛길 : 소백산역(희방사역) - 느티쟁이주막터 – 주점터 – 죽령마루 = 2.8km(50분)
- 용부원길 : 죽령마루 – 버들마 - 보국사지 – 샛골(죽령분교) – 용부사 - 죽령터널 = 3.9km(70분)
- 장림말길 : 죽령터널 – 매바우 - 음지마 - 장림리 = 4.7km(80분)

 

 

3자락은 옛 서민들의 애환 서린 전설이 흐르고 있는 길이다.
예로부터 죽령을 ‘아흔아홉 굽이에 내리막 30리 오르막 30리’라고 했다. 한양과 경상도를 잇는 최단 경로인 탓에 사람들은 힘들어도 이 험한 고개를 넘었다. 그래서 이 곳은 1910년대까지만 해도 사시사철 번잡했다.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하는 선비, 허리품에 짚신을 차고 봇짐과 행상을 지고 힘들게 걷는 보부상, 고을에 부임하는 관리 등 다양한 사람들이 걸음을 재촉하며 숨 가쁘게 걸었던 천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죽령 명승길이다.(명승 30호)


 

 


 

 ○ 4 자락안내

당동리 → 문안골 → 마조리 → 금곡교 → 기촌리(금곡초)
(11.7km, 3시간)

 

○ 교통편(문의전화 054-421-8800)

대강초교 : 단양버스터미널 → 고수대교 → 대강(대강초교에서 하차)(6:15~19:45 1일/10회)

 

 

4 자락은 꼬불꼬불 굽이굽이 할머니가 품은 추억의 이야기길이다. 고수, 노동, 마조지역 등 옛 단양사람들이 이 옛길을 이용하여 죽령을 넘어 풍기장을 보러 다니던 길이다. 농촌풍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며, 당이재 길은 마조지역 주민과 수촌지역 주민이 서로 왕래하던 길로 훼손되지 않고 자연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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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자락안내

기촌리 → 매남치 → 대대리(대곡초) → 구만동 → 보발분교 → 보발재
(15.8km, 3시간 55분)

 

○ 교통편(문의전화 054-421-8800)

- 기촌리 : 단양버스터미널 → 기촌리행(7:10~20:00 1일/12회)


5자락은 구만동의 황금설화를 간직한 오감만족 여행길이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농촌체험마을, 한드미마을을 돌아오는 황금구만량길은 구만돌이 황금설화가 남아있는 길로써 소백산의 당당한 위엄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옛길이다. 이 마을에서는 연중 다양한 산촌문화체험과 생태체험을 할 수 있으며, 동굴을 통해 소백산을 가로질러 순흥장을 봤다는 지금으로서는 믿기 힘든 애기도 들을 수 있다


 



○ 구만동의 황금(제5코스)

   가곡면에 구만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구만동으로 마을 이름이 붙은 것은 한 농부의 효심과 사람의 금욕이 얽힌 슬픈 이야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의 일이다. 이 마을에 가난하지만 부지런하고 일 잘하는 농부가 나이 많은 늙은 부모와 처자식과 함께 오붓하게 살고 있었다. 이 농부는 늙은 부모와 처자식을 항상 편안하고 남부럽지 않게 못해 주는 것이 늘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착실하게 밭을 일구어 곡식을 거두어들여 그것으로 살아갔다. 하루는 밭일을 하다가 피곤하여 잠깐 쉬는 사이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그 짧은 동안에 꿈을 꾸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나타나 “네 집에서 동쪽으로 가면 늙은 소나무가 있다. 그 밑을 파면 무엇인가 나올 것이다. 네가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여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런데 다만 소나무를 다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잠에서 깬 농부는 꿈속에서 시킨 대로 늙은 소나무가 있는 데까지 가서 소나무 밑을 파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깊게 파도 돌과 흙뿐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참을성 있게 계속 팠다. 한길이 넘는 구덩이가 되어도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실망한 농부는 그만 구덩이에서 나와 홧김에 늙은 소나무를 괭이로 후려쳐 상처를 내었다. 그때 허공에서 “가지 말고 잘 보아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덩이 속을 들여다보는데 순간 눈부신 황금빛이 쏟아져 나오며 농부는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혼미 했던 정신을 가다듬고 천천히 일어선 농부는 어떤 커다란 궁궐안에 있는 기분이 들면서 한구석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금덩이를 발견했다. 눈이 번쩍 뜨인 농부는 얼른 금덩이를 가슴에 한고 되돌아 나오려 했으나 밖으로 나오는 길을 잃었다. 땅속으로 빨려 들어올 때 이미 그 입구가 막혀 버린 것이다. 제자리에서 뱅뱅 돌다가 기진맥진하여 털썩 주저앉은 농부는 한참 후에 머리 위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발견하고 있는 힘을 다해 흙과 돌을 헤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황금을 가슴에 안고 급히 집으로 달려간 농부는 또 한번 놀라운 일에 부딪쳤다. 농부가 구덩이에서 금을 얻고 나온 시간이라야 겨우 반나절밖에 안 걸린 것 같았으나 사실은 9일 동안을 구덩이 속에 있었던 것이며, 그동안에 집안 식구들은 굶어 죽고 말았다. 농부는 통곡하며 식구들의 시신을 금덩이가 나온 구덩이에 장사지냈다. 그리고 가지고 온 금덩이도 함께 묻어버렸다. 식구를 굶어 죽이고 금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농부가 얻었던 금은 돈으로 따져 구만량(九萬兩)정도가 되었다고 하며, 그래서 농부가 살았던 동네를 구만골이라고 하였다.






 

○ 6 자락안내

보발재 → 방터 → 온달산성 → 온달관광지 → 영춘면사무소
(13.8km, 3시간 25분)

 

○ 교통편(문의전화 054-421-8800)

- 보발리 : 단양버스터미널 → 보발리행(6:40~18:30 1일/6회)


6자락은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길이다. 산책로 아래 굽이치는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치가 탐방객을 따라 다닌다. 산길을 걸으며 화전민의 삶을 엿볼 수 있고 강가에서 피어나는 물안개가 운치를 보태는 6자락은 임산물 채취체험을 겸할 수 있으며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전하면서 붙여진 온달산성의 역사탐방과 온달관광지를 관람할 수 있다.

 

 

○ 업 구렁이와 욕심(제6코스)

   가곡면 보발리에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비록 집안 형편은 넉넉지 못하였으나, 늘 부지런히 일하며 밝게 살아왔고 집의 일부분을 남에게 세를 주어 부족한 살림이지만 짜임새있는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이었다. 어느 가을날 하루 종일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여느때와 같이 해질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쉴 사이도 없이 부엌에 들어가 저녁을 지으려고 쌀독을 열어보니 쌀독 속에 팔뚝만한 굵기의 검은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아내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기겁을 한 아내는 뚜껑을 얼른 닫고 부엌에서 뛰쳐나와 남편에게 알렸다. 이 이야기를 같은 집에 사는 시누이가 듣고 있더니 “그 구렁이는 이 집에 업으로 들어온 것이다. 얼른 새옹솔에 정성을 다 들여 밥을 지어서 그 앞에 차리고 절을 하면 그 업이 나와서 그 밥의 반을 먹고 갈 테니 그때 아무말도 하지 말고 먹다 남긴 밥을 먹어야 집안이 잘 된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내외는 시누이의 말대로 밥을 지어놓고 치성을 드렸다. 그랬더니 정말 구렁이가 쌀독에서 나와 새옹밥을 반만 먹고는 도로 쌀독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김씨 부인은 뱀이 먹다 남긴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고 꺼림칙하여 먹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시누이와 남편의 채근에 못이겨 억지로 남은 밥을 다 먹어 버렸다.

   그런데 그 일이 있었던 후로는 가세가 날로 번창해지는 것이었다. 밭도 느렸고, 논도 더 사서 남부럽지 않은 살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인은 잘살게 되자 이것이 자랑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되기까지는 뱀이 먹다 남은 밥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부인이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쌀독에 업으로 이쓴 구렁이가 나타나 “이 집에서는 귀가 따가워 도무지 있을 수가 없소. 나는 이제 저쪽 매포에 있는 김남포의 집으로 가야 되겠소.”하고 말하더니 하직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부인은 급히 부엌으로 달려가 쌀독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그 곳에 있어야할 구렁이는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그 집의 업인 구렁이가 없어진 후로는 그렇게 번창하던 가세는 반대로 점점 그 기력을 잃어버리고 처음보다도 더 어려운 살림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상심한 김씨 부인은 할 수 없이 꿈에서 들은 매포에 있는 김남포의 집으로 찾아가 보았다. 과연 뱀은 그 집에 있었다. 부인은 울며불며 다시 돌아와 줄 것을 간청해 보았으나 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뒤 몇 해의 세월이 흘렀어도 뱀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뱀이 돌아와 주기만을 고대하던 김씨 부인은 넔 나간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항상 미친 사람처럼 횡설수설 하고는 뱀 이야기만을 입에 담으며 다녔다. 이런 김씨가 하루는 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한 백발은염의 노인이 나타나 “저 뒷산에 올라가 보시오. 그러면 무밭이 있을터인데 그 무밭에서 가장 큰 무만을 남기고 나머지 작은 무들은 모조리 뽑아 파시오. 그러면 일평생 편안히 지낼 수가 있을 테니….”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깬 김씨 부인은 다음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속옷차림 그대로 꿈속의 백발노인이 일러준 뒷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그곳은 무우밭이 아니라 산삼밭이었다. 김씨 부인은 욕심에 눈이 어두웠다. 그래서 백발노인의 말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온 힘을 다 쏟아 그중에서 가장 큰 산삼을 쑥 뽑았다. 그 순간 김씨 부인은 뒤로 튕기듯 나둥그러지면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얼마 후에야 정신을 차린 부인은 산으로 다시 올라가 보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많던 산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풀만 무성하게 자라있는 것이었다. 허탈하여 기운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온 김씨 부인은 그 후 정신마저 이상하게 되었다. 없는 형편에도 이름난 의원을 찾아다니며 병을 치료하려 했으나 별 효험을 보지 못하고 끝내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 7 자락안내

영춘면사무소 → 동대리 → 의풍옛길 입구 → 베틀재 → 의풍리
(18.2km, 4시간 30분)

 

○ 교통편(문의전화 054-421-8800)

- 온달관광지 : 단양버스터미널 → 온달관광지행(6:40~18:30 1일/9회)

 

7자락은 남한강가에 깎아지른 석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장관을 구경할 수 있는 길이며, 정감록 십승지의 하나로 소개된 색다른 산골마을이다. 고려 때부터 소금을 운반하던 염로였고, 의풍리에는 정감록 십승지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인근에 조선후기 방랑시인 김삿갓을 만날 수 있다.

 

○ 용솟물과 아기장수(제7코스)

   단양군 영춘면 동대리에는 용소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또 이 마을은 용솟말이라고도 하는데 용소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 용솟물은 수질이 좋아 동네 사람들의 음료수로 예로부터 쓰였다. 지금은 동네에 설치된 간이 상수도의 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용수동 앞에는 형제봉이 놓이 솟아 있다. 형제봉에는 큰 바위 두 개가 마치 의좋은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어 그것을 형제바위라고 부른다. 옛날 형제봉에는 커다란 이무기가 어떤 굴 속에 있었다. 몇 백 년을 굴 속에 살면서 용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무기는 마침내 용으로 화신하여 승천하게 되었다. 벽력과 같은 굉음을 내며 용으로 변한 이무기는 굴에서 나와 승천하기 시작했다. 파란 구름이 쫙 깔리면서 용은 그 속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광경을 산에서 나무를 하던 나무꾼이 보게 되어 그만 부정을 타고 말았다. 하늘로 올라가던 용은 냅다 땅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때 용이 떨어지면서 오줌을 쌌는데 그것이 떨어져 괴인 곳이 지금의 용소라 한다. 용소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한다. 이 마을이 처음 생겨날 무렵, 이곳에는 한 내외가 노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내외의 금슬은 퍽 좋았으나 아들을 두지 못해 걱정이었다. 그래서 부인은 우물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아들을 점지해 주십사 백일치성을 드렸다. 부인은 치성의 효험을 보았던지 태기가 있었고 몇 달 후에 옥동자를 분만하였다. 그런데 낳은 지 삼일이 되던 날 산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기는 방 네 귀에 명주실을 매어 놓고 재주를 넘으며 명주실 위를 다니는 것이었다. 그리고 겨드랑이 밑에 날개가 돋아 나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범상하지 않은 아이임을 알게 되고 이것을 남편에게 예기했다. 아기 아버지는 만일 장수가 되면 역적으로 몰려 삼족이 멸망하게 되는 것이니 이에 겁이나 아이를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아기를 엎어 놓고 등 위에 콩 한가마니를 놓았으나 죽지 않아서 다시 한가마니를 더 올려놓았더니 삼일 만에야 죽고 말았다. 아이가 숨을 거두자 별안간 하늘에 먹구름이 일고 천둥이 요란하더니 동네 밖에 있는 늪에서 용마 한 필이 뛰어 나와 삼일 동안 마을 안을 헤매다 신기터에 가서 죽고 말았다. 장수 나오기만 기다리던 용마가 장수가 죽자 같이 죽은 것이다. 그래서 용마가 노온 늪을 용소라고 하게 됐다는 것이다.

 

 




 

○ 8 자락안내

의풍분교 → 삼도접경공원 → 마흘천 → 현정사 → 남대분교 → 주막거리
(6.5km, 1시간 50분)

- 접경길 : 의풍분교 – 삼도접경공원 – 마흘천 = 2.0km(40분)
- 대궐길 : 마흘천 – 현정사 – 남대분교 – 주막거리 = 4.5km(70분)

 

 

8자락은 영월군 김삿갓면, 단양군 의풍리, 영주시 남대리를 거쳐 봉화군 생달마을로 이어지는 3도 4개군을 연결하는 삼도화합의 길로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자유롭게 걷는 길이다.
8자락에서는 영남지방에서 한강으로 흐르는 유일한 강물인 남대천이 흐르고, 사람과 자연,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생명과 화합의 길이다.

 


 

○ 9 자락안내

방물길 → 보부상길 → 주막거리 → 상신기마을 → 늦은목이재 → 생달마을 → 오전댐
(7.2km, 2시간 5분)

- 방물길 : 주먹거리 – 상신기마을 – 늦은목이재 = 3.7km(65분)
- 보부상길 : 늦은목이재 – 생달마을 – 오전댐(에덴의 동쪽) = 3.5km(60분)

 

 

9자락은 저잣거리 삶과 애환이 서려있는 보부상들이 걷던 길이다.
보부상길은 동해안에서 시작되었다. 소금, 미역, 고등어 등을 이고 지고 12령고갯길을 넘어 봉화에서 다시 잡곡으로 바꾸어 사흘 밤낮 산길을 걷다가 산적을 만나 낭패를 보기도 했다 한다. 물가에서 소금 찍어 허기진 배를 채우며 힘겹게 고갯길을 넘던 보부상, 그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9자락은 한평생 등짐과 봇짐을 진 선조들의 눈물이 스며 있는 길이다.


9 자락 잔차라이딩은  상운사에서부터  늦은목이재 까지 돌게단 끌마 벨바 필수

 




 

 

 


 

○ 10자락안내

오전댐 → 뒤뜰장터 → 봉화학예관 → 죽터 → 땅골 → 부석사
(7km, 1시간 50분)

- 쌈지길 : 오전댐-뒷뜰장터-봉화학예관 = 2.5km(40분)
- 소풍길 : 봉화학예관-죽터-땅골-방골-부석사 = 4.5km(70분)

 

 

10자락은 학창시절 밤잠 설치며 기다리던 ‘소풍날’ 친구들과 함께 걷던 추억의 길이다. 그 시절 소풍은 ‘원족’이라 하여 야외관찰을 하면서 급우들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최고의 추억거리였다. 그리고 이 지방 최고의 소풍지는 ‘부석사’였다. 부석사로 ‘소풍’을 떠나면서 10자락은 혼자 걸으며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조용한 산골 마을길이다. 워낭소리가 들리는 듯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10자락의 매력을 느껴보자.

 

 

 

 


 

○ 11 자락안내

부석사→속두들→소백산예술촌→숲실→사그레이→양지마→남절→모산→단산지→좌석(시거리)

(13.8km, 3시간 45분)

- 과수원길 : 부석사-속두들-소백산예술촌-숲실-사그래이 = 6km(90분)
- 올망길 : 사그래이-양지마-남절-모산 = 4.0km(70분)
- 수변길 : 모산-단산지-좌석(시거리) = 3.8km(65분)

 

 

11자락은 녹음 짙은 녹색길이었다가 온 누리가 온통 빨개지기도 하는 예쁜 길이다.
최고의 청정지역으로 꼽히는 소백산 맑은 물과 일교차가 심하고 일조량이 풍부한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자라는 영주‘사과’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사과를 수확기에는 11자락 곳곳이 온통 사과 향으로 가득하며 빨간색갈의 사과로 장관을 이룬다.
 학생들이 부석의 학교로 통학을 하던 길, 마을사람들이 부석 5일장으로 가기위해 지나다니던 정겨운 길 11자락으로 떠나보자

 

 

 

 

 


 

○ 12 자락안내

좌석(시거리)→자작재→두레골(장안사)→점마→덕현→배점→배점주차장
(8.0km, 2시간 25분)

- 자재기길 : 시거리-자작재-두레골 = 2.5km(45분)
- 서낭당길 : 두레골(장안사)-성재-점마 =  2.7km(60분)
- 배점길 : 점마-덕현-배점-배점분교(삼괴정) =  2.8km(40분)

 

 

12자락은 단종과 금성대군의 한이 서린 길이다.
탐방로 대부분 국립공원지역으로 생태자원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거행되는 서낭제를 볼 수 있는 길이다. 자작자작 걸어 넘을 수 있는 자작재, 금성대군을 모시는 두레골서낭당, 충신 배순이 운영하던 대장간 터를 볼 수 있다. 구불구불 시골길을 마주하게 되는 소백산자락길의 마지막 종점코스 12자락으로 떠나보자.

 

 

 

 

 

 

 

 

 

 

영주-소백산자락길1~12.k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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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소백산자락길1~6코스.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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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소백산자락길1~12코스.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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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소백산자락길7~12코스.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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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소백산자락길1~12.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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