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b 타기

16422-----의정부-----------신숙주묘,부용산~도정산~국사봉23

단석 2016. 4. 23. 21:48



" 네 이놈 숙주야- 니넘은 왜 거기에 서있는냐 .. "


양팔은 찢어지고  한쪽 허벅지엔  길다란 쇄코챙이를  꽃은채

가슴엔 벌겋게 달군 쇠덩이를 올려놓고

형틀에 매달려 죽어가면서도   임금을  끝끝내 나으리라 부르며

신숙주를 향하여 고함지르는 성삼문.





적색포함라인 계획코스




의정부-부용산,도정산,국사봉23.gpx




라이딩 코스



의정부 고산동 신숙주선생묘 --- 부용산---의정부코스트코---본민락천---도정산 깃대봉---청학로---국사봉---순화궁로---청학천---산곡저수지---원점



9 시 42 분 출발-------4 시 11분 도착   전체 = 23 km             총 라이딩시간 =  6 시간  30 분




오늘도 혼자서  입다물고 간다   의정부쪽 라이더들이  하두 부용산 도정산  하며 극찬 하길래   확인하러 간다

그리고 가는김에 신숙주선생에게 물을것이다 .      왜 그랬는지....



신숙주선생묘 출발


1-- 부용산 들머리

망향 (望鄕)    고향이 북쪽이신분들의 묘지가 여기에..    능선을 치고 올라간다


부용산 가는길




정상아래




부용산 정상


부용산  신나는 다운길


다운길이 너무아름다워 가기가 싫다


2--    부용산 날머리

녹색길로 나와야하는데 적색길로 나옴


잔차길로



3--       본민락천




4--     개울건너 우 임도로



업힐하다가 지쳐서 주저앉아 아래로 보고  멍하니--    이나이 되도록 아직도 버리지못하고 있는 고집




가다가


가다가


그냥 주저앉아


산천을 본다.


일박 삼일


삼박 사일


아니


이땅 하직하는날 까증


힐링 하며 놀고픈 자리네..







5--    우로





6-- 비루고개

사거리   부용산 다운후  본민락천으로 가 힘든 업힐이 싫으면 곧장 이리로




의정부-부용산날머리1.5.gpx





도정산 싱글길은 정말 환상적이다  서울근교에선 최고다



말도 못하고

표현도 못하는 하찮은 나무들도

이렇게 더불어 살아가고 있것만


우리 인간들은

둘 모이고 셋모이고 다섯모이고

다들모이면

서로 헐뜯고  쥐박고 난리다.


아서라-

다 무질없음이야 


천년만년 살줄 아는냐


남 흉보지 말고


남 원망 말고


너 나   잘 하소--







도정산 정상






8--

신나게 다운중 직진하기쉬운곳




9--   도정산 약수터


10--   도정산 날머리

11--  중국집에서 우회전   청학로로



12--- 국사봉 들머리


국사봉



미세먼지 현상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수락산



국사봉 헬기장


국사봉다운길

13-- 적색으로 다운해야하는데 우측길로 잘못간 지점   통한의 이곳

국사봉을 한번도 타보도못하고 끌바와 멜바로 올라서 놓구선  다운에 홀라당 빠져서 어문길로 빠졌다 

보상은 커녕   맛도 못밧다...ㅠㅠㅠ



적색선   빠트린 코스



14---   잘못 내려선 국사봉 날머리    다 내려오고보니  예상치못한 어느 식당 마당이다..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 진달래꽃이 잎을뒤로하고 만개하여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어느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잔차타기에 딱 좋은날

세종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들을  번개로 소집한다,  동 10 시까지  풀삭 타고 도정산으로  집합혀---


동기 살육까지 감행하면서 왕권을 강화하여 조선왕조의 기초를 다져 넘겨준 아버지 태종의 기대에 부흥하여  하루도 쉬지않고  국사에 힘쓰다

일찍감치 문종에게 물려주고 한가한 상왕세종이기에    이렇게 좋은 날을 그냥 보낼순없다    어린 손자 단종도 함게 한 나들이다.


사실 세종이 통빱 빠삭한  나이든 집현전 공무원들과 어린 단종을 대리고  자주 운동하는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문종이 어릴때부텀 몸이 허약하여 병치래가 연속이라   어의 말에 의하면  장수를 장담하기어렵다하니               (재위2년6개월 36세에 요절)

  나라의 장래가 염려스러운 가운데

다행이 손자 단종이 머리가 명석하고 총명하여  몸만 건강하면  이씨조선앞날은 창창하여 믿고 눈을 감을수있다는 기대감에  이였다.


의정부 도정산 들머리 비루고개,   50 미터만  끌바 한다면  환상적인 싱글 다운길이 펼져지는  코스다,

비루고개에서 시작하여 도정산 정상으로 30 청상과부 허리곡선 같은 능선을 타다 정상 을 코앞에 두고 뒤따라오던 단종이 보이지않아 코베기 같은 언덕에서

다같이 숨을 고르고 있을때    세종은   티타늄  무츠싱코  잔차를 작은 소나무에 기대면서  숨을 헉 헉  그리며 말한다,

( 사실 세종은 당뇨를 앓고 있던처지라  조금만 업힐을해도 쉬 피로하고 숨을 헐덕거리곤 한다 )


" 이보게 범~~옹 "    핵 ~~ 핵    " 네~  마마 "   "  내가 가고난뒤  단종을  잘 부탁하네  여러분들도 다 같이 "


" 내 유언이라 생각하고 명심해 주시구려 "


훗날 피비린내나는 정란을 예견했음인가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이와같은 유언 같은 부탁을 한다

그리고 이말은   곧   신숙주에게는 죽을때까지 --아니죽어서 후세 지금까지도 크나큰 족쇄의 역활로 남게 되는데-


훗날  성삼문은 역모로 모진 고문을 받다 세조 옆에 서 있는 신숙주를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고 한다. 


 "옛날에 너와 함께 집현전에 있을 때  도정산에 번개 라이딩가서  세종게서 우리더러  한 당부가 아직 귓전에 남았는데, 네가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한마디  대꾸도 못한다






신숙주 어른......과연   어떤것이 대의(大義)  이며  무엇이 충 ( 忠 )  이란 말이요.




처음 차를 몰고 공터에 주차를하니  나이많은 어른신 한분이 천천히 다가오며 눈웃음을 짓길래   먼져 인사를했다  " 안녕하세요 "

어서오세요 여기는 신숙주선생의 묘지입니다      아마도 문화해설사 인가보다   신숙주선생묘지주변에는 자손인 신씨들이 주류로 살고있다.


아마도 이분도 자손 이겠지 .     " 신숙주어른은 왜 사육신이 안됬을까요 ? "  라며  질문할려고 입안에서 가물 가물하는걸  뱉지못하고  겨우 참았다.

질문해밨자  장황한 말이 나올건 뻔할 뻔자  또한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적  시각으로 설명할터  그말을 다 듣다보면  오늘 내 라이딩에 차질만 가져올뿐

개인적으로 선생이란 단어도  맘에 안든다 신숙주선생이라...


왼쪽 흰계단이보이는묘지가  신숙주선생( 선생이라고 표현하니 나도 선생이라부름)   아들묘지이고  그 뒤 보이는윗쪽묘지가  하들의 손자 즉 선생의증손자 묘지란다


좌측쪽 설명만 듣고 정작 신숙주선생에대한 설명은 뒤로한체 잔차에 몸을 싫고 슁-----빠져나왔다.



좌측이 신숙주선생  우측이  부인 윤씨


신숙주  (申淑舟) - 1417 ~ 1475      나주출생  본관은 - 고령       자(字) - 범옹      호는 - 회현당 , 보한재       시호는 - 문충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문신·정치가이며 언어학자, 외교관이다. 훈민정음 창제자의 한사람이다.


                           세종의 총애를받으며  문종 , 단종, 세조, 예종 , 성종 까지  무려 6 임금을 모신  사람


                           단종을 부탁한다는 세종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수양대군의 왕권찬탈에 협조하여  후세 변절자 의 대표적인 인물로 기록된 사람




귀신---이름있는 사람치고 어릴적 머리나쁘고 총명하지않은사람 있던가    신숙주또한 일찍감치 인물됨이 보였단다

           1438년 세종20년  23세나이로  공채3등으로 공직에 첫발을 들여놓는데   과거시험 과 함게 귀신이야기가  전해온다

           과거시험을보러  시험장에 들어가는중  문앞에서  청의를 입은 동자하나를만난다   동자는  숙주를보고 하는말

           세상에 크게될 인물이라  평생동안 모시겠노라고     다른사람들 눈에는 보이질 않는다 한사람눈에만보인다   바로 귀신이다


           밥상을 앞에놓고  밥도 먹는다  하지만  밥은 그대로 있을뿐이고  먹는 소리만 크게 난다고 한다

           말그대로 평생을 신숙주와 함게 했으며  공이  노쇄하여 세상 하직을 할때에도 청의동자도 늙어 같이돌아갔다하며

           심지어 신숙주는  죽기전 자식들에게   내제사 지낼때 청의동자 밥도 한그릇더 올려달라고 하였다하니   믿거나 말거나





공무원---세종의 총애를받는다      '나라를위해 장차 큰인물이 될것이라고  세종은 극찬을 아끼지않았을만큼  공을 아꼈고

             공 또한  집현전에서   한글창제에 중심인물로서  그 역할를 다했다   명석한 머리에다 지독한 공부벌래로서 잠자는시간 왜에는  책을 손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하니  가히 짐작할만하다 .  항상 업무시간이끝나도 밤새도록 책을 읽곤 하였으므로  세종은  내관을 시켜  용의를  보내주었다는 일화도있다

             어느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다방면으로 발군의 실력을 나타낸다 

             정치가, 학자, 관리, 외교가, 군사전문가 등등, 다양한 자리에서 조선이라는 나라을 번창시킨 유능한 공무원이였다.  

              설총의 이두문자는물론 중국어, 몽고어, 여진어, 일본어, 인도어, 아라비아어 등 무려 7 개국 나라의 언어를  익혀  표현할줄 알았고  

             한글 창제를 위해   중 요동에 귀향가있는 명나라 언어학자 황찬을무려 13 차레난 방문을 하며 언어에대한 고견을 접할때 

             황찬이 놀랄정도록  언어의 이해력이 높았다한다

              일본을 다녀와서 지도를그려놓고  경계를 다해야한다고 일찍이  예견했고  북방의 정벌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운명적 만남---우연인지 필연인지  어쨌거나  만난다  수양대군과 의 만남이다. 수양대군의 행동으로 보면  고의적인 만남같다  평소  공의 명성을 듣고 있던터

                     집앞을 지나는 공을 불러 들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교류를 턴다   두사람은 동갑이다

                     결정적으로  두사람이 합심이된때는  수양대군이  사은사로 명에 갈때 서장관으로 동해하면서 국사를논하며 의기투합의 완성을 본것같다

                     이때  신숙주는 수양대군의 포부와 야망 등 모든 기류를 감지했을것이다.





피비린내---계유정난  ( 란 이냐   난 이나    란은 난리이고  난은 란을 평정했다고 난 . 누가 어느쪽에서 보는냐 에 따라 )

                일찍이  아버지 세종은 문약한 형에게 왕위를 주고, 아버지 태종을 닮아 호방하고 정치적인 야망이 불타는 진양을

                 세상 잊고 그냥 조용히 살라고 군호까지 진양에서 수양대군으로 바꿔놓았으나   ('수양(首陽)'은 백이, 숙제가 세상 등지고 들어가 살았다는 산 이름이다).

               무색하게도 염려와는 다르게  그가 피비린내나는 풍파를 일으키며 권력 찬탈을 감행하니, 바로 계유정난이다.


                계유정란이  일어났을 때 신숙주는 외직에 나가 있어 직접가담은 하지않았지만   정란이후  정리과정에서 깊숙히 관여하게된다

                옥사책임자로 명받아   옥에 갇혀있는 성삼문을 찾아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데


                " 자네와 난 모시기로한 주군이 달라서 이제 가는 길이 어긋났지만  자네의 굳은 절의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네

                 만약  내가 자네와 같은 선택을 했더라도 나도 자네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흉내는 냈을것이네

                 어른들이 하시던말씀이 생각 나는구먼    굼벵이는 더럽지만 매미로 변해 가을바람에  맑은이슬을 마시고

                 썪은풀엔 빛이없지만 그곳에서 나온 반딧불은 여름밤을 빛내는것이라고

                거러니   깨끗하다함은 항상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음은 항상 어둠에서 비롯 되는것이네 "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사건이 일어나자 단종과 금성대군 처리에 대해 ‘두 사람을 그대로 두면 이같은 일이 반복되어 정치적인 안정을 찾을 수 없다’며

                압장서  강경한 입장을 밝혀 이로인하여 .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유배된 단종은 결국 죽는다

                단종의 유배지로 영월 청령포로 정한인가 바로 영월수령을 지낸바 있던 신슥주다


                세종이 문종의 단종을 보필해달라는 간곡한 유언에도 불구하고  죽음로 몰고가는데 주력하는 신숙주

                무엇 때문일까. 일신상의 부귀와 영화를 위해? 아니면 죽음이 두려워서?


               그렇지 않다면 나름의 명분으로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의 소신을 펼쳐보고 싶은 정치적 판단이었을까.

                 누구도 그의 생각을 알 수는 없다.           오직 신숙주 자신만이 알고 있을 터이고 , 또한 후세 사람들은 각자의 판단에따라  바라볼뿐이다


             

                 역모에 직접가담한자들은 모두 처형을 시키고  그 식솔 가족들은 전부 노비로 만들어서  공신 이넘 저놈에게 선물주듯  다 나누어 가지는중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는 미모가 출중했다고 전해지는데

                신숙주가 정순황후를 자기  노비로 달라고 청했다


                - 세조 전하   정순왕후를 저 주소

                - 씨끄럽다    안되   어디 건방지게  왕실여자를 가지고 놀려고 해    안되 임마..


                 세조는 신숙주의 청탁을 거절하고  정순왕후만은 노비로 두지않고  서민으로 강등하여  사가에 그냥살게 해 두었으므로

                 왕후는  정업원이라는 절로들어가 평생을 흰옷만 입고 고기와 생선을 먹지않고   시녀들이 구걸해온 밥으로 연명 하면서 살았고

                나중에 이를안  세조가 보내준 집과 노비를 거절    오직 단종만 생각하고  수절하면서  83 세의일기로 살다 갔다.


                 신숙주가  미모인 정순왕후를 노비로달라고 청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백성들이 나쁜시끼라고 엄청 욕을 하고  했댔는데

                 이상한것은 평상시 신숙주는 집안에 노비들에게 엄청 관대하게 대하는 편이였다는것이다  노비가  큰 잘못을 했어도 관용을 배풀고

                 노비를 평민으로 이첩시키는과정에서 일종의 세금같은게 있는데  내지않거나 적게내어도 탓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거럼 왜 달라고 했을까,  신숙주의 공무생활을 집어보면  여자나 뇌물같은건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다.  다만 술을 더무 좋아해서 거렇치..

                 왜 구랬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단지 본인만이 알뿐이다    


                 숙주 어른 .....  정순왕후를 왜 달라구 그랬우  ?????        이뿌다구 ???     아님 쬐까 미안한게 돌바줄려구 ??        

                                      아님==단종이상왕이니  정순왕후는 대왕대비지  긍게   니 세조 보담 어른이신 대왕대비가 내 노비?   내 첩?

                                                고럼 세조 니보담 내가 한끗발 높은게 아님?-------------요거땜에 ?





배신자---단종을 배신하고 세조의 왕위 찬탈에 참여해 지독한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세조의 입장에서보면 세상 둘도없는 충신중에 충신이다.

            콩이 싹트면 콩나물  녹두가 싹이나면 녹두나물이지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신숙주의 배신을 빗대어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불렀다고 한다.   녹두나물은 잘 쉬는 음식 중의 하나이다.

            또 만두속에 녹두나물을 짓이겨넣는것을 빗댔다는 의미도 전한다 ,


            계유정란후 신숙주가  2 등공신으로 상장을 받아오자  집에있던 마누라 윤씨가  신숙주한데  "대감이 살아올줄몰랐소" 라며 묵메죽었다

             라고 했다는건 이는 춘원 이광수가 1928 년 11 월 부터   1929년 12 월까지 217 회로 동아일보 연제소설로남긴 "단종애사" 라는곳에  나오는 이야기로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한마디로 소설적인 예기뿐이다  춘원이 신숙주를 좀 싫어했다기보다는 그당시 민족 정신을 일깨우려 한 춘원이

            신숙주를 한 타켓으로 삼지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월탄 박종화도 소설  "목매이는 여자 "  라는곳에   정난후 집에들어온 숙주를보고 역겹다고 침을 밷고는 이튿날 목메어 자살했다고 적어놓았다.

           글이란 참 무섭다  소설의 내용들이 현제까지 사실인냥 전해져오니 .....

          사실 부인 윤씨는 사육신 사건이 나기전  벌써 병사를 했는데도 말이다.


           충북 청원군 남정면에 묵정영당 이라는곳에 신숙주의 영정을 모셔놓고 해마다 고령신씨 후손들이  예를 올리고있다.

           질문해바라 후손들은 어케 평가를하는지.         고령신씨 며느리들은  숙주나물이라는말은 입밖에도 못낸다  만약에 그랬다간

           문중에서 당장 쫒겨 날것이고,  지금도  후손들은 녹두나물은 먹지만 숙주나물은 먹지않는다고..


           여턴간에   성삼문이 사육신으로서 충신으로의 귀감이 될면될수록  신숙주는 배신자의  나락으로   계속 떨어뜨려지는데



                 신숙주는  목숨은 부지했지만 명예를 잃었다----- 그러나 이룬것이 많다---------文忠


           성삼문은  목숨은 잃었지만  명예를  얻었다------그러나 이룬것이 없다---------忠文



만약에 만약에---

                     역사적현실에서 위두사람과 같은 상황이 온다면            두사람중 누구의 상황을 따를것인가. ?





돌아오는길   신호등에 걸린사이   못다한 국사봉  다운능선을 바라보며 입맛 다시고 있자니   국사봉 이 나를보며   빙긋히 웃고 있네.....


( 다음에 또 한번 도전 해바라 이눔아 ㅋㅋ................................................................................................못할것 같으냐 이시끼야....)







의정부-부용산,도정산,국사봉23.gpx
0.48MB
의정부-부용산날머리1.5.gpx
0.04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