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b 타기

11204-----1박2일(2)평창----------오대산

단석 2011. 12. 4. 21:22

 

 새벽에 일어나보니 빙판이다.  걷는것 조차도 어렵다.

 

 아침해는 동해에서 뜨오르는데..  빙판길이니..

 

 산행이냐 ? 잔차냐 를두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도 -- 잔차로 오른다.  우려했던과는달리 갈만하다.

 네베갈 캔다 타야는 그래도 제 할일을 하고.

 

눈이 많으곳에서는 안전

 

 

 

 

 바람에 나무가지에 쌓여있던 눈이 보석 떨어지듯 우르루루루---


중대사자암가는 모노레일

 

 

 1 - 여기서 부터는 멜바다

 

 

 중대사자암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의 수호암자인 중대사자암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일만의 문수보살이 계시는 곳으로,

상원사에서 적멸보궁 오르는 길로 이십 분쯤 걸으면 그윽한 품으로 오는 이들을 반긴다.


세계최초로 양각으로 조성한 극락보수(極樂寶樹) 삼존불상 후불탱화가 장엄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조선 태종 1400년 11월 중창되었으며 이후 왕실의 내원당(內願堂)으로 명종 대(代)에 승영(僧營)사찰로 보호되기 시작하였고 1644년부터 1646년 사이에 중수되었다.

이후에는 왕실보호로 사세(寺勢)를 유지하고 건물을 보수해 나갔으며, 1878(고종15)년 개건되어 요사채로 사용되던 향각(香閣)이 낡아 1999년 퇴우 정념스님이 제불.

보살님께 발원하고 오대(五臺)상징의 5층으로 향각을 신축하여 2006년 8월에 완공되고 건축불사가 마무리되었다.

중대 사자암의 법당인 비로전(毘盧殿)은 화엄경의 주불(主佛)이신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고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좌우 협시보살로 조성되어 있으며

 비로전 내 벽체 사방 8면에 각각 다섯 사자좌의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상계(上界)에 500문수보살상과 하계(下界)에 500문수동자상 세계가 펼쳐져 있다.




 

 

중대사자암 지붕은 층층이 계단을이루고

한아름씩 지고있는 저 하얀눈은

세상 업보인듯 무게로 보인다.

 

지고 있는가   ..?    덥고있는가...?

지면 어떻고 덥고있으면 어떤가,

 

중대사자암 법당 추녀끝은

비단 치마들고 춤추는 아낙의 형상이로고,

 

저 멀리 비로봉에서 온 뭉게구름도

함게 춤 춘다.

 

 

 

 

 

보이..?   저- 멀리보이는 설산을

 

 

 

적멸보궁가는길

 

 

 

 

오대산 적멸보궁
오대산 적멸보궁(지방 유형문화재 제28호)은 신라시대 때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하던 가운데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얻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교의 성지이다.

중대사자암에서 비로봉을 향해 20분쯤 올라가면 나타나는 적멸보궁은 오대산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산맥들이 주위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적멸보궁이 자리한 곳은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 하여 용의 정수리에 해당된다.

 조선시대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곳을 방문하고 천하의 명당이라고 감탄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아래쪽으로 두 개의 샘이 있어 이를 용의 눈, 즉 용안수(龍眼水)라 부른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 단층 팔작지붕의 겹처마 집으로 지방유형문화재 28호로 지정돼 있다.

 지붕은 청기와를 덮었고 용마루와 합각마루에 용두를 올려놓았다. 공포의 모양 형태에서 이 건물이 조선후기에 재건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의 사리는 어느 곳에 모셔져 있는지 그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

다만 적멸보궁 뒤 쪽에 석가의 진신을 모셨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5층탑을 양각으로 새겨 넣은 84센티미터 높이의 마애불탑이 있을 뿐이다.

헌데  웛정사로 오기전 성보박물관에는 부처님 진신사리3과가 전시되어있다. 어디에서 나온것인가.

세조딸  의숙공주가  아버지의 건강과 득남을 바라며 2 가지의 소원을 빌면서  여기 상원사에 문수보살상을  직접 봉안하였는데  근대에 들어와

그 문수보살상을 들여다본바 복장사에서  2가지의 소원이적힌글과 부처님 진신사리 3과가 나왔던것이다


의숙공주가 문수보살상을 직접봉안했다고..???     언제....???


계유정란을 일으켜 살육을 일삼는 아비 세조를보고   때마다 눈물로  호소를하며 말리니  이에 화가머리끝까지난 세조   사약을 내리려 하자   어머니 졍현왕후가  눈치를채고는   유모와함게  야반도주를 시키고

세조에게는 급사했다고 둘러댔는데 말이다 운제 문수보살상을 봉안....


야밤도주한 딸 의숙공주와 세조의 만남을  금계필담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고


세조는 말년에 방방곡곡 사찰을 두루 돌아다니며 부처에게 지난날 자신의 행동을 참회하는 기원을 올렸다. 그러다 속리산으로 가던 중 마침 공주가 사는 고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한 어린아이가 길가에 있었는데, 세조가 아이의 용모를 보니 자신과 꼭 닮은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세조가 수레를 세우고 그 아이를 오라고 불렀다. 그런데 순간,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궁금해진 세조가 옆에 있는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 여인의 울음소리는 무엇인가?”
그러자 어린아이가 말했다.
“이건 우리 어머니가 우는 소리입니다.”
세조는 곧 주위 신하들을 물린 뒤, 아이와 함께 걸어가서 그 집 사립문에 다다랐다. 그러자 어느 여인이 땅에 엎드리더니 통곡하기 시작했다. 놀란 세조가 물었다.
“너는 누구냐?”
공주는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
“아버님! 저입니다. 이 못난 딸은 지난날 아버님께 책망을 듣다 어머님의 분부로 유모와 함께 나와 멀리 몸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다 여기에 도착해 죽지 못하고 이렇게 목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세조는 공주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네가 일찍 요절한 줄만 알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다. 근데 네 남편은 어디에 있느냐?”
이에 공주가 답했다.
“그는 죽은 영의정 김종서의 손자입니다. 그 역시 화를 피해 여기까지 내려왔다가 우연히 길가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의 행차가 이곳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이
미 피해서 지금 집에 없습니다.”
그 얘기에 세조는 탄식하며 말했다.
“김종서한테 무슨 죄가 있겠느냐? 내일은 꼭 돌아오라고 해라. 가마와 말을 보낼 테니, 나와 함께 한성의 대궐로 돌아가자꾸나. 아울러 네 남편에게도 벼슬을 내리겠다.”

이튿날 세조가 승지를 보내 공주의 가족을 데려오게 했지만, 그때 이미 공주는 남편과 자식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습니다. 부마와 공주의 신분을 택하기보다는 가족끼리 단란하게 사는 편을 택한 것입니다. 이후, 세조는 사람을 풀어 백방으로 그들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해내려오는 야사도 그렇고 실록도 그렇고  기록도 그렇고 거러니 믿을 것이 무엇이던가....


 

 

여기가 진신사리를 봉안한곳라고하는데.....진신사리3과는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있고

 

부산에서 여기까지왔다는 아주머니몇분이 방문을열고 나오고 들가고 하시고

적멸보궁 안에서 마이크로 스님의 목소리가 크게들린다.   서울 어느구 어느동 몇번지 누구 누구....무병장수하고 , 돈많이벌고,...

또 - 누구누구는 진급하고, 대학합격하고....    

석가진신사리 앞에서  장사 잘 하시고 계십니다 ㅠㅠ...................           불자 또한-- 공양은 거 어떤 댓가를바라고 함이 아니다..거래가 아닌것이다 말이다

 

오대산정상 비로봉을 갈려고 했는데...

눈이 이렇게 왔는데도 산불방지라고 폐쇄,  갈수없답니다  ㅎㅎ..            어이없는행정에 웃음만 나옵니다.

할수없이 여기 적멸보궁에서 발길을 돌린다.      돌계단 열나게 다운하여 내려오다가 눈속에 머리심고, ㅠㅠ     갈빗대 한쪽 욱신거림..

 


적멸보궁 계단 다운---

 

세상사 무엇이 그리도욕심이많아  석가진신사리에서도 다 버리지못하고  한짐지고 다시내려간다 --

 

  등에진 비로봉 하늘이 무겁다

 

돌계단 다운---  올라가기도 힘들고  내려오기도 힘들고   세상살이 참--

 

눈속에서 먹는 라면맛은 일품이다.

 

딱 무릅까지 차 있는 -

 

정상 비로봉을 오르지못한  아쉬움을뒤로하고  간다..

비로봉은 15 일 이후로  갈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