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7~29 삼척-울진

단석 2018. 4. 5. 16:33


삼척 솔비치



언제나 변함없는 시골 바닷가 간이 시장.  고무함지박속 고기나 - 팔고 있는 아줌마나 다---  애절하기만 하다



가끔은


삶이 고달프고


아푸거들랑


동해 바다를  찾거라


한없는 포용력 으로다


포근히 감싸줄거다


그리곤


알려줄거다


삶이란


고딴것들이 없다면


재미 없다고.


툴 툴 털고 돌아 가라.






1275년(충렬왕 1)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했으며, 현재의 건물은 1403년(태종 3)에 부사 김효손(金孝孫)이 중수한 것이다.

그러나 그후 여러 차례의 수리로 인해 원형이 많이 손상되었다.


앞면 7칸, 옆면 2칸의 겹처마 단층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원래 5칸이었던 것을 좌우로 1칸씩 늘린 듯 이 부분의 공포는 가운데 공포와 다르게 장식이 과다하여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가운데 5칸은 기둥머리에 헛첨차를 꽂고 두공첨차를 받쳐올려 이출목째에서 행공첨차로 장여와 외목도리를 받치고 있다.


 자연암반 위에 세워진 기둥은 모두 길이가 제각기 다르다. 특히 누각 아래의 기둥과 외진주는 바위 생김새에 따라 길이를 조절한 후 그렝이질을 해서 세웠다.

누각의 마루는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이 누각에는 어제시와 1662년(현종 3) 허목(許穆)이 쓴 죽서루기를 비롯하여 13점의 편액과 현액이 걸려 있다.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은 숙종 때의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게시한 것이다.



오십천이 감돌아가는 물돌이의 절벽, 그 벼랑 위에 날아갈 듯 죽서루(竹西樓)가 아름답게 서 있다.

 1875년(고종 12) 삼척부사로 부임했던 심영경(沈英慶)은 죽서루의 빼어난 모습에 감탄하여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이외에도 죽서루의 선경을 찬양한 글은 수없이 많다.

1662년(현종 3) 도호부사였던 미수 허목은 〈죽서루기(竹西樓記)〉에서 죽서루의 비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선의 동쪽 경계에는 경치가 좋은 곳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여덟 곳(관동팔경)은 가장 뛰어나다.”



〈죽서루도〉

1788년 단원 김홍도가 그린 죽서루의 모습으로 오십천이 S자형으로 크게 감돌아가는 석벽이 눈에 띈다. 죽서루 아래에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하천은 오늘날 직강으로 바뀐 상태다.


오십천

오십천의 푸른 물과 깎아지른 석벽, 그 위에 올라앉은 죽서루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삼척시 제공






죽서루에 봄이 왔다


옛날 그사람들이 섰던자리에.


그해 봄은 어땠는가 ?


올 봄과 같았는가


세상의 봄도

나라의 봄도

내 가정의 봄도

내 마음의 봄도


같이 왔으면....



삼척  촛대바위





어쩌다보니 여기를 2 번째 찾는다-- 전에도 거러했지만   권력의 비정함이란....




궁촌 레일 바이크





임원항



울진 에서 막차를 타고 오른다. 몇곳을 들러 자릴채우곤 강릉을 지나쳐  서울로 손살같이 달린다

또 그곳으로..... 인간들이 우글 거리는 가고싶지 않는 그곳으로........................................................................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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