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b 흔적

20311헌인릉

단석 2020. 3. 12. 10:14


" 네   이--- 방 원  이   이  놈~~~~~  "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살해한 방원이를 보고 대노하는 태조 이성계 ....



서울-헌인릉.gpx




사진 적색선이 금천  그 위쪽으로 주차장이며 매표소며 비닐하우스는 모두 없에고 복원 해야 합니다


탄천뚝방   

코로나19 바이러스 겁네 방안에 틀박혀 숨막혀 스트레스 받아 죽으나...                           밖에나와 걸려 죽으나.....

니기미 죽을때 죽더라도 ----------------------------------라며 중얼 거리면서 

          


세곡천


세곡천 막다른길



구글지도를보면  무분별한 하우스가 릉 영역을 크게 침범하고 있고  원래는 홍살문 앞에 금천이 흐르고 또 금천교가 있을터

재실과 홍살문 사이  금천교를 복게하여 버렸다   추측컨데  좌측 나라시설를을 지으면서 진입로를 이용할려고 그랬나보다   돌대가리같은넘들


금천은 이성과 저승을 구별하는경계선이고 금천교를 건넘과 동시에 저승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의미로 조선왕릉에서 흔히볼수있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하찮은 개울같이 보일지는모르지만  아주 중요한 의미로  , 금천을 지나면서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해야한다는 의미도 함게 지닌다

또한 풍수상으로 생기가 내려오다가 냇물를 만나면 머무르게 되는데 그머무름으로 인하여 묘지에 생기를  불러넣게 함도 있는것이다

궁궐에도 금천교가 있다   궁궐의 문을 들어온 사람이 궁궐 내부로 들어가고자 할 때, 그 경계의 의미로 만든 개울에 놓은 다리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금천을 이런  병신 쪼다 같은 넘들이 죄다 덮어버렸으니   도데체 대가리들은 어디다 쓰는지....

문화재가 있는곳을 손을 본다면 반드시 역사학자들에게 자문좀 구하고 했어야 하는데 말야 ..........


원래는 재실 근처부터 또 제실를 지나서부터 는 다른 거 어떤  잡동사니들이 존재하여서는 아니되는곳이거늘.....도로며 주차장이며  비닐하우스며

초장 입구부터    입에서 욕부터 나오는 헌 인릉......



금천교(禁川橋)= 왕릉의 금천을 건너는 다리로서 속세와 성역의 경계역할을 한다

금천교를 가로 지르는  개울이 이세상과 저 세상을  갈라놓는 경계선.   좌측은   귀신과 속세 사람이 만나는  제향공간

개울 우측은 이승 세계  즉 능참봉이 살고 있는 재실이 있는곳  진입공간  이다


2014 년 7 월 27 일 금곡 홍 유릉을 다녀와서 올린 자료







참도......홍살문에서 정자각 까지 박석으로 깔아놓은 신도와 어도가 있는길    바닥돌은 거의 박석 이라고  아주 자연미가 넘치는 자연석입니다

            머 돌를 다룰줄 몰라서 자연석을 깔았겠습니까..  것도 모르고 어느 릉이나 심지어 궁궐에도 복원한다고 박석을 걷어내고 잘 다듬어진 화강석을

            연마재로 갈아서 깔아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데체 이게 말이 됩니까...


            중앙--향로 또는 신도  신위(귀신)가 지나가는길     우측 ..곁에붙어있는 약간 낮은 박석길   어로  또는 어도   임금이 지나가는길


             조선왕이 나라의 최고 어른으로서 어디를가나 대장이지만 딱한곳   여기왕릉에오면 한끗발 아래이다. 우측 어도로 세종대왕이 얼마나 자주 고개 숙이며

             신위 뒤를 따랐을까...  어도 출발선 우측에 사각으로 돌를 깔아놓은곳이 배위인듯 하다, 여기 배위에서 임금은 4번 절하고 신위 를 따라간다


조선 왕릉에 구경가더라도 정자각으로 갈때 부디 중앙 신도로 가지말고 우측 한계단 낮은  어도로 걸어가시길..

부득히 신도를 건너야 할경우는  살폿이 박석을 밟고 목례를 하면서 건너야  합니다.





2014년 7 월 27일 금곡 홍유릉 ( 고종과 명성왕후 )  다녀온뒤  자료

조선왕릉중 2 곳  여기 홍릉과 서삼릉 예릉은   어도가 양쪽으로 2 개가 있다     여기  참도는  박석이아닌 인공석으로 깔아놓은곳

우측어도는 임금이 신위를  따라가는길이고   좌측어도는  왕후가 먼저 가 임금을 기다렸다는 예기도 있는데...........  인공석은  아무리 어수선한 시대라지만 





소멧돌         좌측 향계 또는 신계    우측 - 어계  임금이 올라는계단



신도비



좌측 - 비각   우측- 정자각



우측 능선으로 길를 내어 능침을 조금 더 가깝게 볼수있도록 하였다





조선 제 3대 태종 이방원 과 비 원경왕후 의 쌍분이 있는곳이다




출생---태종은 1367년(공민왕 16)에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의 다섯째 아들이며, 이름은 방원(芳遠), 자는 유덕(遺德)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아버지 이성계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 17 세에 과거급제를 하니  무관 집안에 문관이 거것도 고시에 합격하니

          경사가 아니더냐   방원은 문관이지만 무관의 집안에서 자라 문무를 겸한 흡잡을때없는 인물로 자란다

          근대에  현대 정주영회장이  서울대 합격한 정몽주 아들를 자랑스럽게 여겼듯이 말이다.


          활과 칼과 창이 즐비한 무인집안에  똑똑한 문인될 한명이 나타나니 이성계는 당대 최고의 학자 원천석에게 아들 방원이 의 과외 를 부탁하니

           원천석은 싸움질이나하는 무인집안 아들를 가르친다는게 내심 싫어했으나 막상 방원이의 총명함에 허락하여 제자로 아낀다

          이놈은 적어도 집안 다른사람들관 달리 무력으로 사람이나 해하는 넘 같지가 않아서  이지만........

          천만의 말씀 방원이의 야심을 진작에 알아체지못해을뿐이다.   제 1차 왕자의 난이 일으나자 스승 원천석은 땅릉 치며 후회를 하고 자기가 제자를 잘못

         가르쳤다고 자책을 하며 속세를 떠나 버린다.  훗날  방원이 태종이 되어 존경하는 스승을 모셔 관직을 주려 했으나 원천석은 끝내마다하며 잠적해버린다.

    

         1 째아들- 방우   2--방과 (정종)  3--방의   4-- 방간    5--방원(태종)   6--방연    7--경신공주    8-- 경선공주 




정몽주를 치다----죽여

망해가는 고려를 부정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즉 역성혁명의 최대 걸림돌은 정몽주였다. 그렇다고 어찌 할수도 없는노릇 나라에 정몽주의 자리는 큰지라

정도전과 방원이 매번 이성계에게 어찌할것을 의논하지만 이성계는 충신 정몽주 제거에 절대로 있을수 없는일이라고 꿈쩍도 안한다.

고려 충신 정몽주는 고려 공양왕 옹립에는 찬성을 하지만 나라를 배반할수는 없는 일이고 다만 나라를 바로 잡는일에만 적극협조하겠다고 하면서

역성혁명파 이성계일파를 경계하던중  마침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세자 석(奭)을 배웅하러 나갔던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져 병석에 눕게 되자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준(趙浚) 등 역성혁명파를  제거하려한다.

그러나 이를 알아차린 이방원(李芳遠)  . 이성계를 급히 개성에 돌아오게 함으로써 실패하고, 이어 정세를 엿보기 위해 이성계를 찾아가 문병을 하고 귀가하던 도중

방원은 최후 통첩으로 정몽주를 술자리에 앉혀 회유를 하지만 끝끝네 동참하지않는 정몽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방원이 정몽주를 회유하려 하여가를 부르니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그 유명한 단심가로 답하여 죽어도 난 고려충신임을  알리니 방원은   포기를 하고  심복 조영무를 시켜    정몽주를 선지교에서 사살하여버리니

이때 정몽주는 이미 방원에게 죽임을 당할줄알고 말를 꺼꾸로 타고 고려 멸망을 한탄하며 꺼이꺼이 흐느끼면서 죽임을 당했다고 전한다


이소식을 전해 들은 이성계..... "  네  이 이 놈,,,,방방원이 이놈~~~~~ "  하며 노발대발하여 칼를들고 방원일 찾았지만 눈치첸 방원은 피해버리고...


정몽주의 살해를 시작으로 방원은 조선개국 의  중심에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서막를 예고한다



1차왕자의난----- 또 죽여

조선 창건에 뜻을 같이한 정도전 은 왕권중심이 아닌 신권중심으로 정치를 실현하려 하였고 방원은 왕권중심으로 정치를 실현 하려하니

두사람  사사건건 부딪친다 이성계는 정도전 편  경복궁과 경국대전  모든조선 개국에 깊숙히 개입 하여 모든틀를 마련한 정도전.  고려때 양반과 왕가

사가에서 병졸 병참을 사유화 하는 패단을 익히 알고 있던 정도전은 조선에서는 모든 사가의 병졸 병참을 회수해 버리고 폐지시켜버렸다.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자  세자를 책봉하는데 첫번째부인 한씨소생이아닌 강씨 소생 둘째아들 방석을 정해버린다.

여기에 두가지 큰이유가있다  첮제로는 왕비 강씨가 분위기를보니 나중에 이성계가 죽고 없으면 자기 아들들이 핍박 받을게 뻔한사실

이성계에게 자기 아들을 세자로 정해달라고 부탁 했을것이고  여기에다 백성중심정치를 표방하는 정도전은 한씨소생중  어느누구보담 강씨 소생으로 어린 왕이되면

훨 쉬울터..  그러나 이때부터 방원은 왕비  즉 외척 은 왕권에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사실를 가슴에 새겨두는데......훗날 이것때문에 피비린내가 진동..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나머지 한씨소생 방원을 비롯하여  6 왕자를 제거 해야 되겠다고 결심한 정도전일파,  6 왕자를 각각 다른 도로  대민 정치 구실를삼아

지방으로 보냈다가 거기서 사살하려고 계획을 세운다   거러던중  태조 이성계가 갑자기 병환이라  6 형제가 모두 병문안으로 모여있는중에

잘됐다  이참에 싹-----   헌데  방원이 부인 민씨 가 배가아프다는  급한 전갈 를 받고   서둘러 집에도착하니  민씨왈---

지금 정도전과 남은 일파의 움직임이 수상하오 아마도 왕자들를 칠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이러다간 당합니다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합니다.

그려 --  선수를 칠려해도 병졸들이랑 병기 들은 모두 압수 당했으니....   제가 이럴줄 짐작하고 병졸 과 무기들를 은밀한곳에 숨겨두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5 형제 와  이숙번  조준  그리고 민씨 동생 민무구  민무질  등  따르는 무리들를 이끌고   역공  

지금의 종로 집근처에서 심복 남원과 한잔하며 정사를 논하다가 붙잡힌 정도전 또 조영무에의해 사살 

세자 방석은 서문밖에서 죽이고    방번은  양화도 부근에서 죽여버린다.. 

 제 1차 왕자의난  승리-1398


오늘날 돈 많은 집안 가장이 죽으면서 재산분배를 불평없이 잘 하지못하면 사후에 자식들간에 직이고 살리고 난장판이 된다는사실과 다를바 없는데....



보이는가 인릉과 달리 왕릉 유일하게 참도에 신도와 어도가 따로 없는곳이 여기다  이유는 ?   조선초기 때문인가   배위도 없다 


정도전 일파를 제거한 방원은 실직적 권력을 잡는다  방원의 권력에 눌린 신하들은 태조 이성계에게 둘쩨아들 방과 한데 세자로 책봉하라고 상소를 올리고

...???  그래도 지가 바로 세자가되면 동생죽이거 세자 됬다고 수군 거릴까바..  형부터  하라고   명분을 삼는다  한발후퇴  



왼- 정자각   제를 지는곳  건물이 정(丁) 자와 같이 생겼서            우- 비각  비석이 있는곳


영제들 끼리 살육이 자행되고 거렇게 아끼던  강씨소생  방번과 방석을 잃고 권력에 회의를 느낀  태조 이성계는    1 개월뒤  1398 년   9 월  

 제위 6년 2 개월로  마감하고 세자  둘째아들 방과에게   왕위를 물러주고(정종)  상왕으로 뒤전에 앉는다 

 마누라 잃었지 아들 잃었지 자식세끼들 지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지  나라 경영해야지  심신이 바닥났어...



중앙 능침을 정면으로 보면서 제를 지낸다


얼떨떨  결에 왕이된 방과 정종,     왕이라지만 실질적 왕은 방원이.....   가시방석 같은 왕자리

그리곤 방원이가  세자 ..........   세제가 아니고  ?       형의 아들 ?          차기 왕 ? 

 

이때 대신으로서 헌의하는 자가 말하기를 "옛날부터 제왕이 동모제를 세우면 모두 황태제를 봉했고, 세자를 삼은 일은 없었습니다. 청하건대 왕태제를 삼으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나는 직접 이 아우로 아들을 삼겠다." 했다. - 《정종실록》 권 3, 정종 2년 2월 4일


방원이  형인 정종의 양자가 되는셈...


제2차 왕자의난 1400-- 박포란놈이 있다  1차 왕자의난때 정도전이 방원이를 죽일것이라는 말로  지딴엔 공신이라고 했것만  제대로 된 공신 대접을 해주지 않자

                               " 이무가 비록 정사 공신에 반열에 참여 했지만은 공로가 다른사람의 마음에 만족스럽지못하고 또 이랬다 저랬다 하므로 예측하기 어렵다"

                                 (태조실록)   라며 이무란 넘은 1등공신이고 자기는 2등공신이 된데 대하여

                         불평불만을 품고 시부리며 다니다가 결국엔 지방으로 쫒겨난다  곤데 요넘이 귀양에서 풀려나자  방원이 4 째아들 방간를 꼬트긴다

                         곧 방원이가 방간님을 직일것이라고....다음왕은 내가 해야쥐 하면서 사병을 모아 난을 일으켜 어찌 해볼려다가   방원이 패거리 이숙번한데 

                          열나게 두들겨맞고 방간은 귀향.   박포는 사형  .  방간의난 또는 박포의 난이라고하나   결과는 방원이의 세력을 더욱 굳건히 해주고 만것


마누라 민씨가 숨겨놓은 사병으로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방원은 첫번째로 행하는것이 사병을 철저히 혁파하고  그중에 반발하는이는 즉시 직이고

병권을 장악한다   사병철페  지가하면  로멘스고 남이하면 불륜인고로....

모든권력을 손에 쥐고 흔들어대니..  정종부인..  여보  당신 왕이 좋소?  아니요  난 왕이 싫소  싫타말이요   여보 거러면 우리 왕자리 방원이한데 물러주고

맘 편안히 삽시다...  거려 거럽시다

 1400년 11 월    세자에 오르고 채 1년이 되지 않아 정종으로부터 선위(禪位)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왕위를 순순히 물러준 정종 부부는 방원이의 그늘아래서 아무 탈없이 상왕의 대접을 받으며 장수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다하고...


  신도비(神道碑)   죽은 이의 평생 행적을 기록하여 묘 앞에 세운 비석


조선 제 3 대 태종   이방원

태종의 시대를 열다   피로 얼룩진 왕권강화 의 기틀를 다진 태종 이방원

조선은  ..... 정도전이 밑그림을 그리고.......태종 이방원이 기틀를 다듬고.....세종때엔 전성기를 누린다 세종은 숫가락만 든셈



지금부터 왕권강화와 중앙집권체제에  티끌만큼이라도 걸리적거리는 넘은 모조리 다 죽여버린다--특히  공신 , 외척 들를 불문한다


걸리적거리는 넘 1 ---  외척  처남  민무구 민무질


무구와 무질이 누군가   처남으로 1차 왕자의난때 누나가 숨겨둔 사병과무기로 목숨으로 도와 승리로 이끌게 한 공신중에 공신이아닌가

 1406년(태종 6) 8월, 태종은 느닷없이 충령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나섰다. 갑작스러운 왕의 양도 발언에 놀란 백관과 종친 들이 펄쩍 뛰며 명을 거두라 아뢰었다.

선위는 불가하다는 반대 상소도 빗발쳤다. 그러자 태종은 며칠 만에 못 이기는 척 선위하겠다는 명을 철회했다

.

헌데 여기에 크나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고 무서운 음모가 있었으니    물려주겠다고 해놓고선 모든 백관과 종친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 조금이라도 찬성의 빛이

비치는 넘은 가차없이 날려버리겠다는 계획이다  무구와 무질은 당연히 속으로 쾌제를 불렀지 조카가 왕이되면  왕의 외삼촌인데   .....


태종의 말에 고개를 숙인체 빙긋이 웃고 있다가  철회후 빗발치는 탄핵의 소용돌이에 아차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귀양과함게 직여버린다

마누라 민씨 왕비가 다릴붙잡고 애원해도 방원인 아랑곳 없다 ..

여보 여보 제발 내 동생들 살려주시요 내동생들은 내말만 믿고 당신을 도와 여기까지 왔잔소........ 그때는 그때고.... 외척은 안되....


태종의 견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민씨 형제의 막내인 민무회가 태종에 대해서 불충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유배되었으며,

그의 형인 민무휼 역시 민무회가 불충의 죄를 지은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이유로 유배되었다.  그리곤 ----------------죽여버린다

심지어 마누라 민씨 원경왕후마저 치려하다가  세자의 어미라는 이유로 살려주는척한다......모질다 무섭다 



걸리적거리는 넘 2 ---  사돈.... 세종대왕 왕의 장인 심온

                             세종 장인  소헌왕후 아버지 심온은 세종2년 영의정 에 올라 명나라 사신으로 간사이  동생 심정이

                             상왕 태종이 왕권은 물려주었지만 여전히 병권은 그대로 쥐고 있다고 불평을 하다가 발각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돈심온의 외척을 어찌 할까 하고 있던차 제대로 걸린거지  심정 역모죄로 사형

                             사돈 심온은 돌아오자 말자  영문도 모른체 체포  동생과 역모헸지 하고 고문끝에 자백받아 사형

                             며느리이자 세종대왕 부인 소헌왕후도 어찌할려다 임신중이라 바줬다 하니...


                             거런데 말이쥐  태종이 울메나 무서웁게 지략이 뛰었났는가 하면  사돈 심온을 영의정으로 앉힌자도 바로 태종.

                             즉 명분괴 실리를 다챙기는 정치인.   치기는 내쳐야 하는데 명분이 없어 명분을 만들자면 지위가 올라갈수록

                             바람을 타는법  왕의 장인을 진급시켜주고 주위 사람들에게  인자하다 잘한다 소릴듣고는

                              심온이 명나라로 사신으로떠날때 주위에 온갓 무리들이 배웅을 하고 시끌법적을 떠니  이것을 본 태종

                              외척이 설쳐 대는건 죽어도 못보는 성질.  니가 설처? 하면서  동생 을 엮어서 한꺼번에 정리.....  



걸리적거리는 넘 3 ---  공신 배척  이숙번

                              이숙번이 누군가 조선개국공신으로 하여  방원이 최측근으로서 의형제 까지 맺고는

                             1 2차 왕자의난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신중에 공신이 아닌가

                              이런 이숙번도 자기가 공신이랍시고 거덜먹거리면서 거만하게 굴다가 .......꼴까닥 벼슬 공신 다 뻇어버리고 귀향 보내버린다

                              가차 없다  세상에 걸리는넘 모조리 없에버린다. 피를나눈 형도 날려버리는데 의형제 쯤이야.. 

 

 덕분에 세종대왕은 권력의 암투에 신경안쓰고 나라다스리는데 전념할수 있었지만  태종이 모든 업보를 혼자 다 떠안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할수있다

실제로 태종은 임종하기전 세종을 보고 "주상 세상에 모든 업보는 내가 다 떠안고 갈터이니 주상은 정사에 전념하여 성군이 되시게 " 하였데나...





정면으론 못올라가고 측면으로 능침 가는길




업적 1-----노비변정사업  ( 사병 혁파 )  지는 사병으로 덕봤으니 남은 안되...  하지만 왕권강화 책으로 ...

       2----- 사간원 독립--- 사간원이 무어냐..  왕에게 할말를 제대로 다 하거라  이거임  즉  싫은 소릴한다고  탄압하지 않겠다..   싫은 소리도 듣겠다고..

       3----- 6조직게제----  머야이게?  쉽게야기할려면  왕이 직접 신하들과 대면하고 일하는걸 살피겠노라...거니까 공무원들은 게으름피지말고 열심히 일혀

       4----- 개경에서   한양천도

       5------ 창덕궁 건립

       6------ 양전사업

       7-------호패사업  호적정리

       8------사원재산몰수

       9------ 신문고 설치

       10------ 공도사업

       11------개국공신 무리들 횡포 정리

       12------대마도(쓰시마) 정벌----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 정벌 하여 외구의 노략질를 막다 ( 세종 때 상왕으로서 군권을 쥐고서)

       13------ 태조실록 간행

       14------ 도첩제 실시




조선왕릉중  어느것보다 웅장하고 위엄있게 조성된 태종 릉     석물를 비롯하여 릉 등 모든것이 완벽에 가깝다  조금아쉽다면 대모산 자리가 조금.....



혹 자는

조선 최고의 왕이라고..

성군은 아니고.

권력이란? 물음표에

우수한 성적을 낼수있게끔

학실하게 보여주는 태종.


지금 이순간에도

백성을 빙자삼아

 휘두르는 넘들이 있다.


사람이 살아 있는한...

백성이 있는한...





구름 따라 흘러가는 세월 -  세상 어느 누구도 막을수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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