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b 타기

101201-----산성------------- 남한산성 (풀코스)50

단석 2010. 12. 2. 00:14

 

 

 

산성-군두레봉,허니비50.gpx


              

 

 

 

TIM - 6 h 39     DST - 50 km      AV - 6.67 km       MAX - 45 km       ALL TIM - 9 h      최고높이-544 m    오르막합계-3206.00 m     내리막합계-3212.00 m

 

 

집 - 영장산 - 산성역 좌측싱글 - 산성유원지 - 백련사 업힐 - 남문 - 우측으로 - 검단산 - 망덕산 - 두리봉 - 새우고개 -

 

군두레봉 - 청룡봉 - 오전리 - 장경사 - 동장대터 - 벌봉 - 암문 -Honybee - 섬말 -마장이- Full Monty 임도 - 허니비끝 - 객산 -

 

 마방다운 - 도로 - 집...................................홀로 라이딩

 

 

두리봉에서 새우재고개로 군두레봉- 청룡봉으로 가는길이 가고파서... 가는길에  한바퀴 돌고 오려고 했으나,

청룡봉은 군부대 속으로 숨어 있고,  Full Monty course 는 시간이 없어 또 버려진다.   타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 가물,  매번 지나친다.

이러다가 코스 하나 버려지는건 아닐는지..  우려와 함게  내가 지키리라는 맘도 가져보면서.....

 

1-영장산 들머리     2- 계단다운후 직진

 

 싱글  3-아파트로   4-산성역 사거리 좌 인공폭포 좌 계단으로  5-싱글끝 산성도로에서 좌측으로 10 m 업후 다시우측으로 다운 -신호등건너 유원지로 남문업힐

 

남문 또는 지화문(至和門)--정조3년 성곽을 개보수 할때 지화문 이라 칭하였고, 4대문중 가장크고 웅장한 중심문이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 잇다.

                                      또한 현재는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 역활을 하고 있으며  성문앞에 식재된 느티나무 와 함게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시민의 역사터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7-계단으로    우측은 백련사 가는길      8- 도로 우측으로

 

안개가 자욱한 검단산 가는길

 

9-검단산 헬기장  동쪽으로 다운후 좌측으로 다운---사거리 우측으로 망덕산으로

 

10-망덕산        동쪽  두리봉으로 다운   후 사거리 직진

 

두리봉 가는 싱글길

 

11-두리봉  좌측은 오전리로 떨어지는 harp skit 가는길

 

남쪽  계단으로 다운    12- 새우고개  직진     좌측은 오전리  우측은 성불사 가는 임도

나무가지에 맺힌 이슬방울은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반짝이는데- 그 얼마나 오래 보존 할꼬--남들이 우러러볼때이면  오래 견디지를 못하는법.

 

좌측으로     우측은 아마도 회덕동 으로 다운 하는길

 

여기가 청룡봉이 아닌데 누군가가 표지석을 여기다 두었네..   청룡봉은 군두레봉 다음에 있는것   아마도 군부대 내에 있을듯

 

 

13-군두레봉

 

 

군 벙크를 지나고 다운중 낙엽속 나무 때문에 앞으로 넘어진곳----길이 희미합니다. 

 

앞쪽 군부대 철망 때문에 전진 불가능  좌측으로 턴----14-묘지 바로 아래 임도로 진입

 

임도 다운

 

임도 다운후  15-산성도로만나는 날머리  좌측으로 동문으로 향함  동문 지나자말자  16- 우측으로 장경사로

 

장경사 앞 성벽타고 업힐  17 - 장경사

김훈이라는 작가는 남한산성이라는소설속에서  "장경사 성벽이 아침  햇살을 받아 깨어 난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 장경사 성벽이  아침 햇살을 받아  용트림한다" 라고 표현 하고 싶다.

 

장경사신지옹성(長慶寺信地壅城)--옹성은 일반적으로 성을 보호하기위해 성문밖으로 한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는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옹성은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 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에 대한 거점확보 를 위해

                                                성벽에 덧대어 설치한 시설물로 다른성에서는 찾아볼수없는것이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 개의 옹성이 있는데,

                                               장경사신지옹성은 한봉성과 봉암성에 대한 방어를 주 목적으로 설치 되었고, 포루의 좌측벽에는 이방이라 불리는 무기나 화약을

                                                저장하는 시설이 있었다. 본성과 연결하는 지점에는 전투시에 성내를 출입할수 있도록 암문을 설치 하였다.

 

18-동장대 터(東將臺터)---장대란 지휘와 관측을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 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곳은 동장대가 있던곳으로

                                   동쪽에 있었다 하여 동장대라 불린다. 이곳에는 난한산성에 주둔하던 수어청에 소속된 5 영중 좌영장을 지휘하던 곳이다.

                                   동장대는 인조 2년( 1624) 산성수축시에 설치되었고, 누각도 함께 건립되었으나 18 세기초에 붕괴 된것으로 보인다.

 

김훈의 남한산성 소설에서는

 

동장대를 중심으로 청나라병사와 삶과 죽음을 다투고 있을즘, 임금이 있는 행궁에서는  예조판서 김상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병자호란과 같은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에서,

" 죽을지언정, 굴복은 있을수 없다.."는 청음 김상헌과

" 굴복을 할지라도, 살아야만 한다.."는 지천 최명길..

 

 

-이것보시요 이판.

  싸울수없는 자리에서 싸우는 것이 전이요,

  지킬수 없는 자리에서 지키는것이 수이며,

  화해 할수 없는때 화해하는 것은 화가 아니라 항(降)이오,

 

   화친(항복?)을 주장하는 이조판서 최명길에게 ,   맞서 싸워야한다고(척화론)  주장하는 예조판서 김상헌이  인조 앞에서 마루를 손바닥으로 치며

   울분을 토하며 하는 말이다.

 굴욕은 있을수없다며, 나라의 운명을 결사로 지켜 나가게 한다고 울부짓던 척화신 김상헌의 노력에도 불구 하고....

 

1637 년 인조 15년

,

누르하치가  야만족 여진족을 규합하여 세운 후금.......

권력을 잡기위해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된 누르하치 아들 홍타이지-----그 아들이 이름만 바꾼 청나라.

청 이라는 나라 앞에  

1월 30 일 인조는, 삼전도에서 칸 앞에   항복을 하고만다. ( 투 항 )

 

인조는 3 번 절하고 9 번 머리를 조아리라는(삼배구고두) 항복의식을 행해야 했는데,   청나라 신하들이 제대로 하지않는다고  꼬투리를 잡는바람에

머리를 땅바닥에 부딫쳐야만 했다.

 

이어서 이때부터 명의 연호를 폐지하고 청의연호를 쓰게되며, 척화신 예조판서 김상헌과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 . 이 두 충신은 청의 심양으로 끌려가 투옥되니

한 나라의 굴욕적인 역사로 남게 된다.

또한 청에 수많은 제물을 바쳐야 했고, 소현세자와봉림대군,   50 만이 넘는 백성이 끌려가는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

 

한많은 역사를 되십으며 기억하면서 그때의 급박하고 바람앞에 촛불같은 한 나라의 운명앞에  목숨을 담보로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을 군신들을 생각하며,

동장대 나무 둥 아래서 난, 마지막 남은 몇방울의 물로 목을 축이고.  사탕 한입 볼에 넣고 지금 부터 긴 다운을 해야 할  벌봉 아래, 저아래

Honybee Course를 쳐다본다.   봄이되면 수채화도 같이 아름다운 저 능선을............ 나는-------------- 간다.

 

여장 ( 女墻 )---좌측으로 보이는 담이 여장이다. 여장이란 성위에 낯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숨기고 적을향해 효과적으로 활을쏠수있게 만든 시설을 말한다.

 

19-봉암성 가는 암문

병자호란당시 이 암문을 통하여 성안에있는 병사와 벌봉을 차지하고 있던 청나라군사 사이에 간헐적인 싸움으로 수많은 병사가 죽어나갔던곳.

김훈의 남한산성 소설에서도 이 암문을 통해 성안 말들의먹이인 건초를 준비하던 조선병사를 청 군사들이 소총으로 많은 희생을 내는 장면이 나온다.

 

봉암성(峰巖城)--남한산성은 하나의 성곽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니라, 본성,봉암성,한봉성,신남성 과  5개의 옹성군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이다.

                       이중에서 봉암성은 본성의 동쪽인 동장대 부근에서 북동쪽의 능선을 따라 벌봉 일대를 포괄하여 쌓은 외성이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내부의 동태를 훤히 조망할수있는 벌봉을 청군에게 빼앗겨 곤란을 겪었는데,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숙종 12년에 부윤 윤지선으로 하여금 성을 쌓게 하였고,  숙종 31 년 수어사 민진후 가 포루를 증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봉암성은 남한산성의 본성에 대하여 새로 쌓은 성이므로 신성 이라고도 하며 동쪽의성 이므로 동성이라고도 하였다.

                       성의 길이는 2.120 m 이다.

 

20-벌봉 암문   Honybee 출발점 

 

21-우측으로 섬말다운 들머리

22-좌측으로   마장이다운

 

마장이 싱글길   23-싱글 날머리 우측으로 가다가 다리건너기전 좌측으로

 

24 

25-Full Monty  들머리가는 임도 

 

직진하면 full monty 들머리 만나는곳

 

26-honybee 끝 사거리  우측으로 객산업힐   좌측은 honybee 가는길  직진은 무당집

 

27- 객산 정상  우측으로 다운  다운후 사거리 좌측으로 마방길 다운 

 

 

28-마방길 싱글 다운 끝  좌측으로----다운후 길에서 우측으로 ----29-날머리 마방가는 큰길 도로만남 ---좌측으로  출발점으로 향함 ---상황 끝

산성-군두레봉,허니비50.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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