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b 타기

121219-----강화도---------남산~고려산 32

단석 2012. 12. 20. 12:08

 



강화도-고려.국수.혈구산37.gpx




황산도,동검도 ,삼별초오토캠핑장, 함허동천야영장 , 동막해수욕장( 인천 갈화군 화도면 동막리 7 관리사무소 032-937-4445 )

 

 

 

 


강화도-고려산남산40.gpx




 계획한 코스

 





강화도-싱글28.gpx









 

강화도-남산~고려산32.gpx     


              

 

라이딩한 코스

 

9 시 35 분  강화대교 건너 좌측  강화도 관광안내소 주차장 출발-------------------4 시 35 분  도착


 

뚝방길 따라 풍물시장으로  

 

 

 1-- 강화읍 풍물시장                                

황색선 = 바른코스

 

터미널 앞에서 나아간 청색선은 gps 끊겨 잘못된  트랙이고  약수터를거쳐  산성까지 그으진 황색선이 올바른 트랙이다.

약수터에서 성곽 까지 끌발로 올라서  우측으로 소나무 사이로  다시 약수터라고 이정표가 있는곳으로 가야 하나

우린 그냥  강화읍을 전망하기좋은  성곽을 따라 바로 치고 올라간다     남장대를 향하여  타다가 끌다가.............

 

성곽에서 바라다본 읍내

 

사적 제132호. 고려가 몽고의 침입으로 인해 강화도로 천도할 당시 궁궐과 함께 축조되었다.

원래 내성(內城)·중성(中城)·외성(外城)의 3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성이 규모있게 궁궐의 내성으로 축조된 것은 1234년(고종 28) 1월부터였고, 당시의 성은 토석혼축(土石混築)이었다. 그리고 이 내성을 방어하기 위한 중성이 축조된 것은 1250년(고종 37)으로, 둘레가 약 7㎞에 달하는 토성이었다. 또 중성을 둘러싸는 외성은 1233년부터 축조하기 시작하여 1235년에 전국 주(州)·현(縣)에서 일품군(一品軍)을 징발하여 대대적인 공사를 벌인 결과 동쪽 육지를 바라보는 선을 따라 3만 7,070척에 달하는 성이 1237년에 일차 완성되었다.

 

고려시대의 강화 내성에는 고려 궁궐과 관청이 들어서 있었는데, 그 규모나 배치를 모두 송도(松都 : 지금의 개성)의 것을 옮겨놓은 듯이 비슷하게 하여 왕족과 귀족들은 송도에서와 마찬가지로 화려한 생활을 영위했다.

 궁궐의 정문은 정남향의 승평문(昇平門)이었다. 한편 중성에는 모두 8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송도의 것을 그대로 본떠 동에 선인문(宣仁門), 서에 선기문(宣祺門), 남에 태안문(泰安門), 북에 북창문(北昌門)을 두었고, 동남에 장패문(長覇門), 서남에 광덕문(光德門), 서북에 선의문(宣義門), 동북에 창희문(彰熙門)이 있었다. 그러나 고려와 몽고의 강화가 성립되어가던 1259년(고종 46) 몽고의 요구로 내성이 헐리게 되었고, 외성도 허물었다.

 그리고 고려정부가 완전히 송도로 환도하는 1270년(원종 11)에는 궁궐도 헐리어 현재는 궁궐터마저 불완전하게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이 있자 인조가 잠시 피난했으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봉림대군을 비롯한 빈궁(嬪宮)들과 신하들이 피난했으나 청군에 의해 강화성이 함락되면서 포로가 되었다.

 

 이렇게 외침이 잦자 조선정부는 이후 수차에 걸쳐 강화성을 개축하여 화강암의 석성으로 바꾸고 여장(女墻 : 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도 설치했다. 이렇게 하여 강화성은 4개의 성문과 4개의 암문(暗門), 남·북·서쪽의 장대(將臺)와 2개의 수문(水門)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현재 북악과 남산을 연결하는 지역에 남아 있는 성벽의 일부와 성문은 거의가 조선시대에 축조되어 1970년대에 보수된 것이다.

 

 동문은 망한루(望漢樓)인데 지금은 없어졌다. 그리고 서문은 첨화루(瞻華樓)로 1711년(숙종 37)에 건립되어 그동안 퇴락되었다가 1977년에 개축되었다. 남문은 안파루(晏波樓)로 1711년에 건립되었으나 1955년 홍수 때 무너진 것을 1975년에 복원한 것이다. 북문은 1783년에 건립하여 진송루(鎭松樓)라 했으나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77년에 복원했다. 조선시대에는 성내에 많은 관아(官衙)가 들어서 있었으나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당시 많은 건물이 소실되어 현재는 고려 궁터에 동헌(東軒)과 이방청(吏房廳) 등이 복원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서문 근방에 일본의 강압에 의해 강화도조약이 조인되었던 연무당(鍊武堂)터가 있다.

 

 

올라갈 만하다  얼음을 피해 요리 조리로 ...

 

 

 

 

 

아래 성곽에서 약수터 이정표 따라 싱글길로(우회)  온길과 만나는곳   삼거리..

 

뒤돌아본 우회길

 

 

2-- 남산 날머리

 

 강화도 자연산 굴  + 라면

 

3-- 좌측으로                직진은 저수지 우측으로 읍내 가는 길

 

4--동네길에서 좌측으로 산을 접어든다  임도

5-- 고개정상 에서 우측철조망 따라 몇걸음가다가  우측으로 철조망 따라 간다.

 

 

6-- 고려산 이정표따라   또는 백련사 

 

 7--백련사

백련사까지 빨래판 긴 업힐을하고  헐덕거리면서  도착,    절 앞 우측으로보이는 임도가 보여  저길이지 하면서   다시 업힐 하여

차단기 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헉 헉 거리고 있는데..

지나가시던 스님 왈                       "  거리로는 막혀있는 길입니다."...................ㅠㅠ

 

절 초입  나무계단으로 된  등산로 로 올라가야 한다.-----------------군부대 포장된 도로 만나 좌측으로 업힐

 

진달래 꽃피면 구경하는전망대

 

 

고려산 정상 통신탑

 

 

 

8--삼거리 좌측으로 다운                   직진은 낙조봉----미꾸라지고개로

9-- 적석사 절

 

 

우측 보이는 낙조봉

 

멀리 우측으에서  좌측으로 다운한 능선

 

 

10-- 우측으로   고비고개로 향하여

 

 

혈구산 들머리   고비고개

 

해는지고-----------------------

 

2 개의 작은 산을 포기하고 시내로 가로질러 원점회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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